
책 소개
이태호(조각가, 2020달성대구현대미술제 큐레이터) 오늘날에는 무엇이든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시기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예술이 된다. 팝아트의 선구자로 지명되는 앤디 워홀 Andy Warhol(1928-1987)은 “나는 그저 언제나 내게 아름다워 보이던 것들, 우리가 깨닫지 못한 채 매일같이 쓰고 있던 물건들을 그린 것뿐이다.”“캠펠 수프가 내 식탁에 있으면 생활이고 액자 속에 있으면 예술이다.”라는 발언을 통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물고, 그 무엇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기존의 다양한 장르의 매체가 결합하여 새로운 매체의 예술이 등장했고 미 美를 예술의 개념에서 뺄 수 있다는 사실과 예술이 시각적으로 인식 가능한 일체의 내용을 담지 않고 그냥 완전히 추상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부엌에서 보던 별것 아닌 물건(늘 만지작거리던 컵과 유리병, 화병)들이 빛과 마주할 때면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되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일상의 평범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정서를 통해 투영된 이미지를 포착하고 그 이미지를 온전히 렌즈 안에 붙잡아두며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 작품은 작가의 특정한 장소와 시간이 저장된 평범한 일상이면서도 함축하고 있는 기억이라 할 수 있겠다.원진숙 작가는 한동안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진에 관한 고민이 뒤섞여 우울했었던 적이 있었다. 한 가정의 아내와 엄마로서의 제 역할 속에서 이 시대의 여느 작가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대한 불확실과 정리되지 않는 사진에 대한 개념 그리고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 어딘가에 집중하고자 하는 내면의 깊은 고민으로 발현되어 스튜디오에서의 정물 촬영의 계기가 되었다. 카메라 앞에서 모든 피사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낸다. 무엇을 발견했다면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담을 것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와 어떻게 찍을 것인가는 오롯이 작가자신이 갖는 주관적인 결정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작가는 일상의 기물들인 소재를 통해 부분적 디테일을 강조하며 구체적인 사실은 숨기며 자신만의 특별함을 찾아낸다. 주방 창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그림자의 놀이에서 발견한 사물과 빛이 만들어 내는 찰나의 순간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개념을 이입시켜 사물의 표정과 의미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즉, 대상을 재현하는 것에서 탈피하고 해체해서 미적인 신념을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사진을 빛(사실)과 어둠(비사실)의 조화라고 본다면 작가의 작품은 그사이의 모호하고 몽환적인 경계에 서 있다. 또한, 작품에서는 회화적 색감과 감성적 음색을 담고 있다. 사물의 형태와 디테일을 강조한 초기 정물 사진에서 벗어나 중첩되고 반복되는 규칙에서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집착과 구속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그 자유는 또 다른 다양성을 시도하게 해준다. 전시에 있어 특별한 점을 든다면 1. 기존의 사진 전시가 벽에 부착하는 방식을 고집했다면 작가는 전체 공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벽과 바닥을 하나의 유기체적인 공간으로 활용하고 설치한다는 점이다. 전시에서 보는 것처럼 공간을 통하여 사진과 설치가 예술적 표현의 매개체로서 결합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두 영역이 상호 보완해주는 역할을 잘 활용하여 그 효과에 있어서 관람자들에게 시각적 유희와 함께 사유와 명상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이미지를 제공해주고 있다. 현대예술이 장르의 해체를 넘어 새로운 통합과 생성을 야기하듯이 작가는 이미 특정 장르의 구분에서 벗어나 장르와 장르가 만나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형성해 나가는 시기임을 수용하고 작품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화 다원화의 시대에 작가 자신의 표현과 자유로움을 거침없이 제시한 것이다. 2. 기존의 인화지가 아닌 알루미늄판과 아크릴판에 프린트하는 창의적 기법을 적용한 것이며 또한 직접 물들여 제작한 배경지에 우연히 표현되어진 거친 질감과 혼용된 색감의 의도치 않은 이미지의 발견은 작가에게 있어 호기심의 발원이 되었고 풍부한 상상력과 더하여 사진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창조성이란 임의적인 우연성에서 비롯되며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물과의 조우에서도 색다른 시각이미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사진은 너무나 우연적이어서 사진가의 의식의 통제에서 탈주하는 ‘무의식적 시각’이 생산된다고 한다. 익숙한 듯 낯섦이 원진숙 작가의 작품에서도 적용 가능하다. 예술이 전통적으로 배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창작되는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현대예술에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3. 여백은 호응하는 대상이 있을 때 비로소 함의를 이해할 수 있다. 중국 청대 초기의 화가이면서 예술 비평가인 단중광笪重光(1623∼1692)은 ‘허 虛와 실 實은 상생하는 것이다. 그림이 없는 곳은 모두 묘경을 이룬다.’라고 했다. 즉 허와 실이 어우러져야 묘경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을 구성함에 있어 여백과 절제된 단순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백은 형상을 두드러지게 하고 더욱 뚜렷하게 한다. 동양화의 여백이 그 증명이고 작가의 작품에서도 확인 할 수 있겠다. 삶은 늘 예측 불허의 기습적인 상황에서 당황하게 된다. 곧 끝날 것이라 여겼던 현상들이 일상이 되어 버렸고 언제 끝날 것인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지쳐 가고 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은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더욱더 강하게 작용해 왔으며 극복할 의지와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작가는 첫 개인전을 통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정체성 검증과 함께 구도자의 길처럼 사진을 이해하고 배워 나가는 단계에 서 있기를 원하고 있으며 더하여 소통을 중시하고 공감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별것 아닌 걸 뭔가 근사하게 만들어 보여주려는 게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라는 작가 노트에서 수줍은 고백 같은 작가의 예술적 개념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예술 지향적이기보다는 휴희적이고 대중적이기도 하다.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자유로운 작품들을 통해 사진의 탈 장르적 경향과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체성이 추후 이어질 작업의 토대가 되길 바라며 ‘타인의 고통과 아픔에 공감하며 그 사람에게 스며들 듯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라는 작가의 이타적인 바램처럼 아름다운 작가로 거듭나는 밑받침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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