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미지는 먼저 도착한다.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얼굴을 보고 우리는 누군가를 본다. 실제로 일어난 적 없는 장면에서 어떤 사건을 읽는다. 사진처럼 세계와 접촉한 흔적도 없고, 그것을 보증할 대상도 없다. 그런데 이미지는 이미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다. 가리킬 대상보다 가리킴이 먼저 도착한다. 생성형 AI의 이미지는 이 이상한 순서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세계가 먼저 있고 이미지가 그것을 옮겨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이미지에서 반복된 특징과 관계가 계산되고, 아직 없던 장면이 하나의 완결된 표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표면에서 거꾸로 사람과 장소와 사건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미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이 책은 화면의 앞쪽에서 시작해 이미지의 뒤편으로 들어간다. 평균화, 확률적 복원, 정렬, 데이터셋, 잠재 공간. 생성형 AI가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계산을 하나씩 따라간다. 그러나 계산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완성된 이미지가 우리 앞에 놓이는 순간 또 다른 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시선을 읽고 감정을 읽고, 누가 말했는지 묻고, 무엇을 원했는지 뒤늦게 알아차린다. 계산된 표면 위에 의미와 욕망, 주체의 자리가 생겨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질문은 이미지가 아니다. 계산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인공신경망의 출발점에서 맥컬록–피츠는 알 수 없던 것을 계산 가능한 형식 안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라캉은 반대편에서, 형식화가 끝까지 진행될 때 오히려 그 체계가 닫지 못하는 자리를 보았다. 한쪽에서는 조건이 실재를 붙잡는다. 다른 한쪽에서는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실재가 빠져나간다. 생성형 AI는 계산의 꿈을 전에 없이 멀리 밀어붙인다. 그러나 계산이 정교해질수록 계산되지 않는 것은 사라지는가. 이 책의 답은 반대쪽을 향한다. 계산이 실패해서 실재가 남는 게 아니다. 계산이 성공하고 이미지가 완결된 표면으로 도착할 때, 그 완결이 끝내 닫지 못하는 자리가 드러난다.
목차펼치기접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다고 믿는가 01 평균화 — 닮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02 확률적 복원 — 노이즈에서 이미지로 03 정렬의 기술 — 말과 이미지가 연결되는 방식 04 표본화된 세계 — 데이터셋이 만드는 경계 05 잠재 공간 — 보이지 않는 좌표 06 기표의 연쇄 — 계산되는 자리 07 크로스캡 — 뒤틀린 표면 08 동일화 — 시선이 놓이는 자리 09 이중 결여 — 뒤늦게 도착하는 주체 10 실재 — 끝내 계산되지 않는 것 에필로그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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